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스웨덴/역사/바사 왕조 (문단 편집) ===== 덴마크 내전 개입 ===== 구스타브 1세 바사는 스웨덴 독립전쟁 당시 [[스톡홀름]]을 공격하기 위해서 해군이 필요해지자 북독일의 뤼베크와 협상을 벌여 [[한자동맹]]의 해군을 지원받았기 때문에 그 대가로 상당한 특권을 허용해야만 했다. 그러던 중 AD 1533년 덴마크에서 [[프레데리크 1세]]가 사망한 뒤 그의 아들인 [[크리스티안 3세]]가 왕위를 계승했지만 그가 루터교 신자였기 때문에 로마 가톨릭 세력이 크리스티안 2세의 복위를 요구하는 반란인 '백작 전쟁(Grevens Fejde)'이 일어났다. 구스타브 1세 바사는 이를 뤼베크의 영향력을 약화시킬 좋은 기회로 여기고 크리스티안 3세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이는 사실 단순히 뤼베크를 견제하는 것 뿐만 아니라 장차 크리스티안 2세가 덴마크 왕위를 되찾은 이후 스웨덴 왕위까지 노리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지 위함이기도 했다. AD 1535년 [[스웨덴 해군]]이 릴라벨트 해전에서 한자 동맹의 해군을 격파했고 [[스웨덴군|스웨덴 육군]]은 [[스코네]]를 점령했다. 크리스티안 3세는 요한 란차우를 중심으로 한 덴마크의 유틀란트 귀족들과 스웨덴의 지원을 바탕으로 [[유틀란트]] 반도의 농민 반란을 진압하고 올덴부르크 백작 크리스토페르의 군대를 격파하였으며 이듬해인 AD 1536년 [[코펜하겐]]을 함락하고 덴마크 전역에서 왕으로 인정받는 데 성공하였다. 이렇게 백작 전쟁에서 뤼베크가 패배하면서 그동안 뤼베크가 지니고 있었던 발트 해 무역에 관한 특권이 모두 취소되었고 그동안 스웨덴이 뤼베크에 대하여 지니고 있었던 채무에 대한 변제 조건도 스웨덴에게 유리하게 변경되었다. 그리고 AD 1541년 브룀세브루 조약을 체결되면서 덴마크와 스웨덴이 동맹관계가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